화약무기의 발명가 최무선
  유구한 우리 민족사에 이름을 남긴 명장들중에는 고려시기 화약과 화약무기의 발명가, 군사지휘관이였던 최무선(1326-1395)도 있습니다.
  고려봉건통치배들의 부패타락으로 말미암아 14세기 후반기 나라의 군사력은 매우 약화되여있었으며 이 시기 빈번히 기여든 일본해적떼의 침입으로 인민들은 재난을 당하고있었습니다.
  해적떼를 무찌르는데 가장 위력있는 무기는 화약무기라고 생각한 최무선은 꾸준한 노력과 실험끝에 화약의 원료인 염초를 만드는 법을 알아냈고 그에 기초하여 마침내 화약무기를 발명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그것을 대량생산할데 대한 최무선의 제기로 1377년에 화약무기제조사업을 맡은 관청인 화통도감이 설치되고 그는 그 제조관으로 임명되였습니다.
  그는 화통도감에 동원된 수많은 수공업자들의 창조적지혜에 의거하여 화약과 화약무기, 포탄까지 만들었습니다. 최무선의 지도밑에 화약무기(대포)를 장비할수 있는 함선의 건조사업도 처음으로 진행되였습니다
  그가 발명한 화약과 화약무기의 위력은 1380년의 진포해전과 1383년의 박두양해전에서 시위되였습니다.



  진포해전때 최무선은 부원수로서 직접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최무선은 화약무기를 발명, 제작하여 봉건국가의 군사력강화에 이바지한것으로 하여 벼슬이 지문하부사에 이르렀으며 조선봉건왕조에 와서 검교참찬문하부사의 벼슬을 받았습니다.
  최무선은 화약과 화약무기를 만들어 나라의 국방력강화에 이바지한것으로 하여 오늘까지도 그 이름이 전해지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