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성전투의 명장 박서
  박서(본은 죽산)는 몽골군의 제1차침입시기 구주성에서 고려 군대와 인민을 이끌어 적의 4차례에 걸치는 포위공격(적이 침입한 1231년 9월부터 이듬해 적이 철퇴할 때까지 )을 격파하고 성을 끝까지 고수한 고려시기의 애국적장군입니다.



  1231년 살례탑이 거느린 몽골군이 압록강을 건너 철주(철산)를 점령하고 구주성을 여러겹으로 포위하며 거듭 공격해오자 서북면병마사였던 박서는 부근 여러 고을의 군대를 모두 구주에 집결시키고 방어군을 서문, 남문, 북문으로 일제히 출동시켜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궁지에 빠진 적들이 변절자를 성안에 들여보내여 투항을 설교하자 그는 그자를 처단하고 항전을 계속할 강경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몽골군이 약 한달동안이나 성을 포위하고 갖은 방법을 다하여 덤벼들었으나 그때마다 능숙한 전법과 지휘로 이를 물리쳤습니다.
  이렇게 되자 몽골군은 서북지방의 여러 성을 강점하고있던 자기들의 군대를 모조리 동원하여 구주성을 공격하여왔습니다.
  적들이 30대의 포차로 성벽 50여간을 파괴하자 그는 파괴된 성벽을 수리하면서 적의 침공을 물리쳤고 이어 성밖으로 출격하여 적을 무찔렀습니다.
  적들은 최후수단으로 운제(큰 사다리)를 가지고 성벽을 기여넘으려고하였습니다.
  이때 박서는 대우포라는 큰 칼로 적의 운제를 모조리 파괴해버렸습니다.
  이렇게 그는 성안의 군민을 능숙하게 조직지휘하여 끝까지 성을 지켜냈습니다.
  다음해(1232년) 고려정부가 몽골군과 강화를 맺은후에도 박서는 완강히 성을 고수하였습니다.
  그의 용감한 투쟁은 구주성을 지켜내고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박서의 지휘밑에 구주성방어자들이 완강성과 용감성을 발휘하여 성을 고수하는것을 보고 침략전쟁으로 늙어온 몽골군의 한 장수는 이처럼 맹렬한 공격을 받고도 항복하지 않는것은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박서는 그후 문하평장사로 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