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지요
세계적인 대문호 백인준
  우리 나라의 문학예술사에 새겨진 유명한 작가들가운데는 백인준선생(1920.10.27-1999.1.20.)도 있습니다.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출생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남다른 소질을 가지고있었습니다.
  자기의 시집을 만들어보는것이 소원이였던 그는 나라가 해방된 후에야 첫 시집 《인민의 노래》를 내놓게 되였습니다.
  이때부터 50여년간 그는 눈부신 창작활동으로 한생에 거대한 문학예술재보를 남겼습니다.



  해방직후부터 당과 국가의 많은 중요직무를 력임한 그의 현역작가생활기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많은, 그리고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였습니다.
  그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꽃파는 처녀》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와 연극, 가극 등으로 옮기는데서 특출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는 생애에 4권의 시집, 20여편의 영화문학, 근 10편의 가극대본과 희곡, 100편이 훨씬 넘는 가요들을 비롯하여 시대를 대표하고 인민의 사랑을 받는 수많은 기념비적걸작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 어떤 종류의 글도 척척 써내는 우리 나라 문학예술계의 로장이였습니다.
  시문학만 놓고 보아도 서정시는 말할것도 없고 가사의 명수, 정론시, 풍자시의 대가, 즉흥시의 능수로서 놀라운 필력을 보여준 다재다능한 재사였습니다.
  그는 작가로서의 높은 정책적안목과 함께 뚜렷한 개성, 풍부한 예술적환상과 독특하면서도 째인 극작술, 예리하고 격동적이며 때로는 생활의 구수한 향기가 물씬 풍기는 다양한 양상의 필치, 비상한 창작속도를 가지고있었습니다.
  누구도 따를수 없는 실력가, 정열가였던 그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주체88(1999)년 1월 그는 가요 《인민은 그 품에 길이 살리라》를 탈고하고 원고지우에서 순직하였습니다.
  그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였으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사업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대문호 백인준선생은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계관인, 조국통일상수상자였으며 우리 나라 문학예술계의 첫 로력영웅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