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에 류례없는 잔악무도한 《총독정치》
  지금으로부터 110년전인 1910년 10월 1일 일제는 《조선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그 간판을 바꾸고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우리 인민을 정치적으로 억압하는 폭압기구였을뿐만아니라 군사적강권에 의거하여 조선의 기본경제명맥을 지배하기 위한 강도적인 경제적략탈기구였으며 민족교육과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한 탄압기구였습니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조선총독》들을 모두 폭력적인 기질을 가진자들로 선발하였습니다.
  일제는 이런 포악한 자들을 《총독》으로 임명하고 이자들에게 행정, 립법, 군사지휘 등 무제한한 권한을 주었습니다.
  말그대로 조선《총독》은 식민지통치의 절대적인 권력자였습니다.
  일제는 《총독정치》전기간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악무도한 민족말살정책들을 시행하였습니다.
  일제는 우리 인민의 반일의식을 거세하고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유지할 목적으로 헌병경찰제도를 조작해낸 다음 이에 기초하여 극악한 중세기적공포정치인 무단통치를 실시하였습니다.
  일제는 《범죄즉결령》에 따라 조선의 이르는 곳마다에 설치한 헌병 및 경찰기구들을 동원하여 법적수속이나 재판도 없이 조선사람들을 마구 처형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안법》, 《출판법》 등 각종 악법들을 조작하여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 등 우리 인민의 모든 권리를 무자비하게 짓밟았습니다.
  쌓이고쌓인 우리 인민의 민족적울분과 사무친 원한은 드디여 1919년 3월 1일 전인민적봉기로 폭발하였습니다.
  조선인민의 거세찬 반일기세에 질겁한 일제는 종래의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꾸는 놀음을 벌려놓았습니다.
  당시 일제는 《관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종래의 《총독》을 현역무관만이 하게 되여있던것을 문관도 할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개편하였으며 도장관을 도지사로 바꾸고 지방경찰권을 그의 권한하에 넘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의 악독한 식민지《총독정치》의 범죄적목적을 가리우기 위한 한갖 기만술책에 불과하였습니다.
  일제가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개편한 후 경찰기관은 종전보다 줄어든것이 아니라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일제는 종래의 로골적인 헌병, 경찰대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비밀경찰을 대폭 늘이는것과 함께 헌병보조원을 수많이 두고 무고한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검거, 투옥, 학살하였습니다.
  일제는 방대한 규모로 확장된 경찰폭압기구에 의거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야수적으로 탄압하는 한편 경제적략탈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제는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 말과 글까지 없애려고 갖은 악독하고 비렬한짓을 다하였습니다.
  또한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 랍치, 유괴하여 일본군의 성노예로 전락시켰고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제놈들의 침략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내몰아 무참한 죽음과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하였습니다.
  일제는 《총독정치》시기 인적자원뿐아니라 수많은 자연부원도 깡그리 략탈해가다 못해 가정들에서 사용하던 놋그릇, 놋수저는 물론 녀자들의 비녀까지 빼앗아갔습니다.
  일제의 중세기적인 《총독정치》에 의해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불행, 피해와 손실은 이루 다 헤아릴수 없습니다.
  지난날 일제가 식민지《총독정치》를 강행실시한 죄행은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할수 없고 덮어버릴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