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거장 박연

  박연은 조선봉건왕조초기에 활동한 음악리론가, 연주가로서 고구려의 왕산악, 가야의 우륵과 더불어 중세기 우리 나라의 3대음악거장으로 일러오고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음악적재능을 발휘한 그는 1411년에 문과에 급제한후 집현전 교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등의 벼슬을 거쳐 관습도감의 제주로 있으면서 봉상시판관을 겸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그는 궁중음악에 관한 일을 전적으로 맡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혼란된 궁중음악을 바로잡고 불비한 외래아악대신 향악에 기초한 조선식아악, 신정아악을 창제하는데 힘을 기울이였습니다.
  우선 당시까지 전해오는 향악곡들을 모두 수집정리하는데 달라붙어 앞선 시기에 창작된 향악곡 40여곡을 수집하였습니다. 또한 12률려의 절대음고를 나타내는 12률관을 우리의 민족적성률에 맞게 새롭게 제정하고 그에 맞추어 아악기들의 제작과 개량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가 당시 경기도 남양에서 발견된 석경 만드는 돌을 가지고 제작한 16개의 석경을 매단 편경과 16개의 종을 매단 편종은 종래 아악에서 써오던것과는 다른 조선식아악기였습니다.
  그는 우리 나라의 성률에 맞게 12률관을 제정하고 기준악기로서의 편경, 편종이 완성되자 악기도감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여 남급, 정양, 장영실 등과 함께 수많은 아악기들을 제작하고 재래의 아악기들을 향악기에 맞게 개량하였습니다. 또한 제례악, 조회악을 새롭게 제정하고 그에 필요한 악공, 무공들의 수를 늘이고 그들의 복식도 다시 제정하였으며 대관현악단의 연주를 성과적으로 보장할수 있는 총보형태의 새로운 정간보를 창안하여 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1447년에 장편악장가사인 《룡비어천가》(125장)를 관현악에 맞추어 연주하기 위한 악곡 《치화평》, 《취풍형》, 《여민락》 등과 문무, 무무에 사용할수 있는 악곡 《정대업》, 《보태평》, 《발상》 등이 창작되자 그것을 정간식문자악보로 기보한 《세종악보》(1453년)를 출판인쇄하여 조회악, 연례악, 제례악의 대관현악합주에 총보로 리용할수 있게 하였습니다. 
  박연은 향악의 수집정리와 민족적성률의 체계화, 12률관의 창안과 악기제작 및 개량, 신정아악과 정간보의 창제, 대관현악총보로서의 《세종악보》 편찬 등 우리 나라의 중세음악을 리론실천적으로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음악리론가이며 기악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