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명장 권률


  권률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관료이며 군사지휘관입니다.
  1582년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례조좌랑, 호조정랑을 지냈습니다. 임진조국전쟁초기에는 광주목사로서 군사를 모집하여 방어사 곽영의 휘하에서 싸웠습니다.
  1593년 2월에 3도체찰사, 전라도순찰사로서 부대를 이끌고 서울을 탈환하기 위하여 서울북쪽으로 이동하였으며 권률자신은 2 3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양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 들어가 적의 불의의 공격을 예견하여 성방어준비를 튼튼히 하였습니다.
  2월 12일 적장 우끼다가 3만명의 군사로 공격해오자 산성방어자들은 그의 지휘밑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나섰습니다. 첫 전투에서 패배한 적들이 3개 부대로 나뉘여 다시 공격해왔으나 행주산성방어자들은 적들을 크게 격파하였습니다. 성안의 부녀자들도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라다 줌으로써 싸우는 군인들을 적극 도와주고 고무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행주치마》라고 부르는 녀성들의 앞치마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였다고 합니다.
  행주산성전투에서 적들은 거의다 격살되고 얼마 안되는자들만이 살아 도망칠수 있었습니다. 력사는 이 전투를 가리켜 《행주대첩》으로 부르고있습니다.
  권률은 전투공로로 하여 이해 6월에 도원수로 임명되였으며 1597년 일본침략자들이 다시 쳐들어왔을 때에는 부대를 이끌고 12월에 경상도 울산 도산성에 대한 포위작전을 진행하여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후 권률은 충청도관찰사로 있다가 다시 도원수로 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