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비법의 협잡문서-《한일합병조약 》
  강도일제가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고 공포한 때로부터 11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을 통하여 조선의 외교권과 내정권을 강탈한 일제는 조선민족을 말살하고 형식상으로만 남아있던 우리 나라의 국가존재를 영원히 없애버리기 위하여 국제조약체결의 초보적인 원칙과 규범마저 란폭하게 유린하면서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였습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철저히 진압하고 조선봉건정부를 군사적으로 굴복시켜 저들의 야망을 순조롭게 실행할 목적밑에 수많은 침략군을 서울일대의 주요지점들에 배치하고 경계태세를 강화하도록 하였습니다.
  일제는 고종이 거처하고있던 덕수궁과 순종황제가 있던 창덕궁을 겹겹이 에워싸고 황실과 황궁으로 드나들던 관리들을 위협공갈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요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대무력을 대폭 증강하였습니다.
  특히 일제는 서울에 살벌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시내의 곳곳에 헌병, 순사들을 조밀하게 배치해놓고 두사람이상 모여 이야기를 해도 단속하고 심문하였습니다.
  총칼로 무시무시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상태에서 일제는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미쳐날뛰였습니다.
  1910년 7월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낼데 대한 임무를 받고 서울에 기여든 조선《통감》 데라우찌는 조선봉건정부의 최고통치자인 순종황제의 전권대표임명권한까지 가로채고 친일역적에 대한 《전권위임장》을 제멋대로 조작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순종황제에게 그에 비준할것을 강요함으로써 《조약》을 강압체결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친일매국역적들과 야합하여 순종황제로부터 《전권위임장》에 대한 비준을 강제로 받아낸 일제는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냈습니다.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일제의 이 특대형범죄에 대해 순종황제는 1926년 4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병합인준은 강린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것》이라고 폭로하였습니다.
  공인된 국제조약체결절차에 의하면 국가간의 중요한 문제들을 규제하는 조약들은 반드시 국가원수의 비준을 받아야 효력을 가지게 되여있습니다.
  그러나 《병합》을 알리는 순종황제의 《칙유문》에는 행정적결재에만 사용하는 어새만 있고 황제의 서명이 없었습니다.
  《칙유문》에 조선황제의 서명이 없었다는 사실은 순종황제가 조선을 강탈하려는 일제의 책동을 반대하여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우리 인민의 거세찬 반일투쟁기세에 겁을 먹은 일제는 이 불법비법의 《조약》날조사실을 숨기고있다가 8월 29일에 가서야 공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일제가 날조해낸 《한일합병조약》은 철두철미 국제조약으로서의 초보적인 체모도 갖추지 못한 사기협잡문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