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조 왕건
  왕건은 고려의 창건자로서 통치년간은 918년부터 943년까지입니다.
  왕건은 송악(개성)지방의 유력한 봉건세력으로서 896년 궁예에게 협력하여 발어참성(개성안에 있던 성)의 성주로 되고 그후 수군을 거느리고 라주를 비롯한 서남지방의 여러 주, 군을 치고 후백제의 배후에 태봉국의 강력한 거점을 마련하였습니다.
  왕건은 여러차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점차 승진하여 913년에 태봉국의 최고관직인 시중으로 되였으며 그후 날로 심해지는 궁예의 포악한 행위를 경계하면서 자기의 지반을 닦다가 마침내 918년에 홍유, 배현경 등의 지지밑에 정변을 일으켜 궁예를 내쫓고 새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는 나라이름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고려라고 하고 년호를 천수로 제정하였습니다.



  왕건은 이듬해 1월 수도를 철원으로부터 그의 오랜 세력지반이던 송악으로 옮기고 새 왕조의 정치적안정을 보장하며 후삼국통일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는 우선 태봉국때부터 첨예화된 사회계급적모순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인민들에 대한 일시적인 양보, 회유정책을 실시하면서 여러 지방에 할거하고있던 봉건세력들을 포섭하는 신축성있는 립장을 취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신라를 끌어당기고 후백제에 대하여서는 군사적공격을 강화하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한편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거란을 경계하면서 대동강이북지역의 옛 고구려강토를 확보하며 이주하여오는 발해유민들을 적극 포섭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935년에 신라를 평화적으로 병합하고 936년에는 후백제를 무력으로 타승함으로써 후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왕건이 국토통일을 이룩할수 있었던것은 나라의 분렬을 끝장내는데 리해관계를 가진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왕건의 신축성있는 정책은 국토통일이라는 거창한 사업의 실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왕건은 943년에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