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개성시의 유적유물들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조국땅 어디에서나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 지혜가 깃들어 있는 유적유물들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중부에 있는 개성시에는 왕건왕릉, 경효왕릉, 대흥산성, 개성남대문, 연복사종, 만월대, 개성첨성대, 선죽교, 숭양서원, 관음사, 표충비 등 유적유물이 많습니다.
  개성시는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 고려의 수도였습니다. 
 
  왕건왕릉
 


  이 릉은 고려의 태조왕인 왕건(877-943)의 무덤으로서 개성시 해선리에 있습니다. 무덤무지의 높이는 8m이며 병풍돌의 대각직경은 19m입니다.
  왕릉의 네 귀에는 돌범이 놓여있으며 앞에는 상돌과 망주석, 돌등 등이 있습니다.
 

 

 
  연복사종 


 
  이 종은 1346년(고려 충목왕 2년)에 만들어 연복사(고려의 수도 개성에 있던 절)에 달았던것인데 1563년 연복사가 화재를 입자 남대문(개성시 북안동)으로 옮겨왔습니다. 종의 크기는 아구리직경 1.9m, 높이 3.12m, 두께 0.23m이며 질량은 약 14t입니다.
  연복사종은 동합금으로 주조된 우리 나라 5대명종의 하나입니다.

선죽교



  선죽교는 개성시 선죽동의 로계천에 놓여있는 고려시기의 돌다리입니다.
  《고려사》 최충헌전에 선지교란 이름이 나오는것으로 보아 1216년이전에 이미 이 다리가 있었음을 알수 있으며 그때의 다리이름은 부근에 선지서원이 있어서 선지교라고 하였습니다. 선죽교는 길이 8.35m, 너비 3.36m로서 크지 않지만 고려말기의 봉건관료이며 유학자인 정몽주가 리성계일파의 자객 조영규 등에 의하여 여기에서 피살된(1392년)것으로 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였습니다.
  정몽주가 피살된 후 그가 죽은 자리에서 참대가 돋아났다고 하여 다리이름도 선죽교라고 고쳐 불렀습니다.
 
  표충비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비입니다.
  표충비는 고려충신으로서의 절개를 지켜 선죽교에서 피살당한 정몽주(1337-1392)의 충절을 찬양하여 세운것입니다.
  비각안에 동쪽을 향하여 서있는 두개의 비중 북쪽의것(높이 3.17m)이 1740년 영조(통치년간: 1725-1776)가 세운것이고 남쪽의것(높이 3.58m)이 1872년 고종(통치년간: 1864-1907)이 세운것입니다.
  두 비석은 같은 짜임새인데 바닥돌, 거부기받침과 비몸, 비머리로 이루어졌습니다. 거부기받침은 10t이 넘는 통돌로 거부기조각을 한것입니다. 
  이밖에도 개성시에는 만월대, 숭양서원, 관음사를 비롯하여 우리 선조들의 발전된 예술적재능과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유물들이 있습니다.